7월 17일은 제헌절 76주년이 되는 날이다.

제헌절은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로부터 해방된 뒤 UN 감시하에 실시된 1948년 5월 10일 총선거에서 선출된 제헌 국회의원 198명이 1948년 7월 12일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근간으로 한 헌법을 제정해 같은 달 17일에 공포한 뜻깊은 날이다.

모든 국민은 이날 각 가정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경축하면서 다시 한 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자유민주의 이념은 헌법전문에서 확실히 밝혀놓았듯이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국민 각 개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게 해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는 데 있다.

한마디로 개인의 정치, 경제적 활동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보장과 민주주의적 이상을 조화시키는 것을 무엇보다 큰 과제로 삼고 있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제1조1항으로 시작된다.

이 조항은 헌법제정 이후 9차례의 개헌에도 변하지 않은 우리나라 국가 정체성이자 국시이다. 더 나아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 헌장 1조에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함’이라고 돼 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국시인 민주공화제를 잘 지키고 있나?

민주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는 기본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민주제는 개인의 권리가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다수의 지지를 받은 사람들이 개인을 대신해 통치하는 대의제를 바탕으로 한다.

군사독재정권을 거쳐 1987년 민주화 체제가 자리 잡으며 우리는 개인의 권리가 신장된 민주제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공화제는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공화제라고 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사회의 핵심적인 철학이다.

로마공화정은 독재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정이 아니라 집정관, 원로원, 민회가 상호 세력균형을 이루며 상호협력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체제였다. 로마공화정의 유산은 그 이후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 당시 입법, 행정, 사법이라는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는 기본틀로 자리 잡게 됐다.

22대 국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 단독개원을 했고 단독 원 구성을 강행하기까지 언급되다가 개원 28일 만에야 겨우 원 구성을 마쳤다.

그러나 막말과 모욕으로 점철된 상임위원회의 운영과 특검법, 방송법 등으로 여야의 정쟁은 끝이 없다.

우리의 국시인 공화의 개념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국내적으로는 우리의 국시인 공화의 개념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인데 범세계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미국 현지 시각) 펜실베니아 주 야외유세 도중 총격을 받았다, 총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른쪽 귀 윗부분을 관통해 그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유세를 지켜보던 한 명이 숨지고 두 명이 부상을 당했다. 유세장 단상을 향해 여러발을 발사한 총격범은 경호원에 의해 사살됐다.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이 다시 민주주의 시험대에 서고 말았다. 현재의 자유민주정치체제를 세운 나라로 평가받는 미국이지만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적 갈등과 분열로 인해 진작 민주주의의 위기에 직면해있는 대표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이미 2021년 1월 트럼프의 대선 패배에 반발한 극렬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최종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리던 의사당을 급습해 난동을 벌인 바 있다.

이번 사건은 증오가 판치는 미국정치의 속살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다.

젠더 이민자 소수자 정책을 놓고 반목하던 워싱턴 정치는 2016년 트럼프 등장 후로는 더 자극적인 언사가 일상이 됐다.

통합의 책무가 있는 대통령 트럼프가 비판자를 조롱하며 증오를 부추겼고,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면서 민주주의는 질식해 갔다.

막말 정치의 한 축인 트럼프가 총탄을 맞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미국에선 케네디 형제와 킹 목사가 암살된 혼돈의 1960년대를 거쳐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가 있었다. 이후 40년 넘도록 자취를 감췄던 정치적 암살이 다시 시도된 것이다.

정치 양극화와 정치인 선동을 더는 용인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이런 미국적 현상은 보면 볼수록 우리 정치와 닮았다. 우리도 올 초에 야당 대표를 겨냥한 테러가 있었다.

정치 분열이 부른 테러는 비단 한국이나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2022년 7월에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선거 유세 중에 총탄에 맞아 사망했고,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도 지난해 4월 와카야마현 유세 현장에서 폭발물 투척 테러를 당했다.

우리 국내 상황도 결코 나아 보이지 않는다. 총선을 석 달 앞둔 지난 1월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방문 중 피습됐다.

민주주의가 폭력에 의해 짓밟히는 위기 앞에서 정지권부터 반성이 절실하다. 거짓말만 일삼는 지도자, 정상적인 제도와 언론을 부정하며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지지자들, 극렬지지층 눈치를 보며 부화뇌동하는 정치인들, 여기에 더해 ‘아니면 말고’ 가짜뉴스까지 더해져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정치문화가 정치테러를 낳았다.

정치테러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진영 간 증오가 더욱 심해지고, 정치인들이 이를 방기하거나 부추긴다면 어떤 사태로 치달을지 모른다.

정치풍토를 바꾸는 것은 정치권의 몫이다. 정치인이 먼저 상대를 악마화하는 행위를 멈추고 대화와 포용의 대상으로 바라봐야 한다. 250년 전 대통령제를 발명한 미국처럼 우리도 새로운 미래 정치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정치는 정답을 가지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타협하고 양보하며 답을 찾아 나가는 예술이다.

그런 이유로 개헌을 통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고, 정치지도자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국가 리더로서의 인품을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개인의 권리가 신장된 민주제와 더불어 사는 사회의 핵심적 정치철학인 공화제가 더 이상 퇴보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류근찬

통일이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